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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다빈치가 숨겨 놓은 비밀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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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이라이프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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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전설

: 진위가 검증되지 않은 허구와 소문 사이의 어느 것

허나, 때로는 특정 개인 혹은 특정 집단에 의해 괴담으로 격하된 사건의 잔류 형태

로어

: 소문으로 전해지거나 사실인 양 구전이 이뤄지는 이야기

혹은 출처를 확인할 수 없는 기록물의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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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생각하는 가장 위대한 예술가는 누구인가.

당신이 생각하는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은 무엇인가.

현대인의 관점에선 아마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그의 패널화 모나리자가 가장 많은 대답을 차지할 것이다.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 및 전시되는 모나리자의 경우 1962년 보험 평가액 1억 달러를 기록했으며, 이는 오늘날 기준으로 10억 달러 이상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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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의 모델은 리자 게라르디니라고 알려졌다. 그녀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유력자였던 비단 상인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의 두 번째 아내였으며, 조콘도가 그녀의 출산을 기념하고자 레오나르도에게 초상화를 의뢰했다고 한다.

루브르 박물관에 따르면, 이후 모나리자는 레오나르도가 사망하기 1년 전인 1518년경 프랑스 왕국의 국왕 프랑수아 1세에게 구입되며 왕실 컬렉션에 편입됐다고 전해진다.

이탈리아에서는 해당 작품을 델 조콘다의 부인이라는 의미로 라 조콘다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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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는 이미 세간에 잘 알려진 사실.

헌데, 레오나르도가 아무도 모르게 제작해 숨겨놓은 작품이 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다.

위의 패널화는 리바 디 술비아테 가문의 '못난이 조콘다'이다. 얼핏 기존 라 조콘다와 비슷해 보이나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고 있고, 상반신의 부피가 확연하게 크며, 배경의 외부 풍경 역시 깊은 대기 원근을 형성하지 못한 채 단순하고 평평하게 눌린 밀도 차이만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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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이탈리아 왕국 북부 롬바르디아 주 밀라노 지역.

한 귀부인이 밀라노 보존 후원회 비공개 모임에서, 루도비코 카를로 리바 디 술비아테 백작이 자신의 가문 수장고에 보관된 한 점의 패널화를 '못난이 조콘다'라고 언급하는 것을 듣는다.

귀부인은 이 발언을 단순한 사교적 농담으로 치부하지 않았다. 하여 1897년 11월, 백작에게 관람 허가를 얻어 해당 패널화를 직접 확인한다.

'못난이 조콘다'에는 분명 설명하기 어려운 어긋남이 존재했다. 상체의 부피감이나 회전축이 기울인 머리와 자연스럽게 맞물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숙하게 포개진 양손의 정교하고도 세밀한 표현과, 입가와 눈가로 뒤늦게 조정된 듯한 레오나르도 특유의 회화 기법인 스푸마토도 엿보였다. 반면에 전체적으로 색조도 단조로웠고 레오나르도가 작품들마다 신경 쓰던 자연에 대한 묘사와 깊이감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미술사적 조예가 남달랐던 귀부인은, 그림과 마주한 이래 흥미를 넘어선 어떤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함에 매료되며 그날부터 '못난이 조콘다'를 손에 넣고자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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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 디 술비아테 가문은 밀라노 북동부 브리안차와 비메르카테 권역에 오래된 사유지를 보유한 지방 귀족가였다. 당시 이 가문은 누적된 채무를 정리하고자 부동산 일부와 가문 수장품을 담보로 제시하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회화·가구·은기·문서류를 포함한 동산 감정표가 작성되고 있었다.

이 목록은 공개 경매를 위한 도록이 아닌 채권자 측 공증인과 사설 감정인, 그리고 보존 후원회 일부 인사에게만 제한적으로 회람되는 채무 정리 문서였다.

'못난이 조콘다'는 외부 감정상 '롬바르디아식 여성 초상, 목재 패널화, 레오나르도 방식에 가까운'이라는 주석과 함께 낮은 등급의 회화로 처리되고 있었다. 가문 내부 호칭 또한 '못난이 조콘다'에 불과했으며, 백작 역시 해당 작품을 고가의 진품 후보가 아니라 오래된 가문 수장품 중 하나로 가벼이 여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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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부인은 채권자 측과 보존 후원회 인맥을 통해 백작 가문의 채무 일부를 정리하고 보존 위탁 명목으로 작품의 임시 관리권을 확보한 동시에, 해당 패널화의 존재가 외부 시장으로 나가지 않도록 조율했다.

그렇게 마침내 '못난이 조콘다'를 손에 넣은 귀부인은, 목재 패널의 벌레 피해와 후면 균열을 확인하고자 밀라노권 사설 보존업자를 통해 의학 실험용 로엔트겐선 장치를 보유한 실험실에 투과 촬영을 의뢰한다.

그리고 이러한 투과 촬영 과정에서 회화 표면층 아래의 내부층이 포착된다. 내부층에는 새로운 인물과 더불어 야외 풍경으로 보기 어려운 배경 구조가 나타났다. 내부층 초상의 인물은 표면의 여성 초상과 거의 동일한 구도, 손 위치, 머리 기울기를 보였으며 다른 점은 상체 방향 및 회전축이었다.

표면의 라 조콘다형 초상은 내부의 초상을 위장하기 위해 덧칠한 회화층으로 보였다. 내부층 초상의 인물은 여성이 아닌 남성이었으며 실내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귀부인은 '못난이 조콘다'가 단순한 라 조콘다형 모사품이 아니며, 내부층 초상의 인물이 '살라이'라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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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이 레오나르도 공방 또는 그 주변에서 제작된 것으로 전해지는 위 살라이 초상화 속 모습과 흡사했으며, 살라이의 사후 자산 목록에는 '라 조콘다'라는 회화 항목이 존재했기 때문. 게다가 백작 가문의 권역은 살라이의 출생지 및 활동지였던 오레노와 밀라노권으로부터 지리적으로 크게 떨어져 있지 않았다.

살라이, 본명 지안 자코모 카프로티 다 오레노는 레오나르도가 1490년 무렵 자신의 생활권 안으로 들인 인물이다. 기록상 그는 열 살의 나이에 레오나르도의 집과 작업실에 들어왔고 이후 단순한 견습생이나 하인으로만 분류하기 어려운 위치를 차지했다. 레오나르도는 그에게 옷과 생활비를 제공했으며 동시에 그가 돈과 물건을 훔치고 거짓말을 한다는 기록을 반복적으로 남겼다. 레오나르도는 자신의 메모에다 그를 '도둑, 거짓말쟁이, 고집불통, 탐욕스러움'이라고 표기했다.

'살라이'라는 호칭은 레오나르도가 그를 불렀다던 별칭으로 전해지며 이는 당시 이탈리아어권에서 '작은 악마'에 가까운 별칭으로 풀이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레오나르도가 살라이를 결코 내쫓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레오나르도는 그를 교육시키고 의복과 장식 비용으로 꾸준히 지출했던 사실이 메모에 남아 있다.

후대 전기에서 살라이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얼굴과 곱슬머리를 지닌 젊은 제자로 기록된다. 그는 28년 동안 하인, 조수, 제자, 모델로서 레오나르도의 생활권과 작업권 주변에 머물렀던 가장 오래 지속된 남성 동반자였다. 이러한 사실만으로 둘의 관계를 세간의 풍문처럼 확정된 연인 관계로 분류할 수는 없다. 다만 둘 사이의 관계가 단순한 사제관계, 고용관계, 또는 작업실 관습만으로 환원되기 어렵다는 점 또한 사실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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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백작 가문이 기한 내 채무를 상환하지 못하면서, '못난이 조콘다'는 채권자단의 승인 아래 귀부인에게 매각 또는 대물변제 형식으로 전환됐다. 이때부터 작품은 귀부인 가문 측의 비공개 보존품으로 묶였고, 자신이 후원하던 보존기술자들에게 패널화를 맡겨 바니시층과 후대 덧칠층의 안정성을 확인한 뒤 표면층 제거를 단계적으로 진행했다.

회화 속에서 살라이로 추정되는 인물은 정돈되지 않은 침상과 베개가 놓인 어두운 방 안, 침대 바로 곁의 낮은 의자 또는 가구에 다리를 꼬고서 앉아 있다. 이 '살라이 조콘다'에서 자연은 레오나르도의 기존 작품들과 달리 거대한 배경 역할이나 인물을 감싸는 것이 아닌 작은 창 너머의 여명으로 축소되어 있다. 창은 세계를 닫힌 방 안으로 압축한다. 해당 차이는 공개 초상과 사적 초상 사이의 성격 차이로 보였다.

레오나르도가 반복적으로 다루었던 성모 계열 회화 속 상반신 정면 방향을 통한 안정감과 고개 기울기, 살라이 초상 및 살라이 모델설로 전해지는 세례자 요한 회화의 머리 기울기와 시선 장치, 그리고 과시되지 않지만 표정 전체에 걸쳐 눈치채기 힘들 정도로만 표현된 스푸마토 기법과 그를 뚫고 나와 선명하게 처리된 살라이의 애수 서린 얼굴까지.

어떤 작품보다도 섬세하고 정교하게 처리된 신체 굴곡과 입체감, 또 가까이서 볼수록 한쪽 시선이 화가의 위치를 남몰래 의식하는 듯한 시각적 장치는 살라이 초상화 및 세례자 요한 회화의 그것보다 더 신경 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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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이 조콘다'는 레오나르도 친필 가능성이 높은 후보이지만, 레오나르도와 살라이의 관계를 어떤 특정한 관계로 증빙하는 작품으로는 확정되지 않는다.

다만, 본 패널화가 보이는 지극히 사적인 밀도는 통상적인 공방 모델 초상이나 후대 라 조콘다 변형본의 범위를 넘어선다. 해당 구조는 레오나르도가 가장 오래 곁에 두었던 인물에게 적용한 특별한 사례로 보인다.

따라서 핵심은 레오나르도의 후기 초상 언어가 어디까지 사적인 방향으로 이동할 수 있었는가, 그리고 살라이가 그 이동의 대상이자 수신자였을 가능성이 어디까지 남아 있는가에 있겠다.

한편, '살라이 조콘다'를 소유한 귀부인은 해당 작품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서 가문 대대로 관리해 오고 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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