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 전문지에서 뽑은 역사상 8인의 명장.JPG 댓글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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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대왕
기원전 356년 ~ 기원전 323년

그리스 북쪽에 위치한 자그마한 나라인 마케도니아 왕국의 왕자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그 총명함과 용맹함이 남달랐다고 한다. 명마 부케팔로스를 단번에 길들이고,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베어 버린 일화 등은 그의 단호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들
아버지 필리포스 2세의 사망으로 20세의 나이에 즉위하여 그리스 폴리스들의 반란을 잠재우고 후방 안정 차원에서 마케도니아 북동쪽의 트라키아와 다키아를 평정한 데 이어 일리리아(오늘날의 크로아티아와 알바니아)의 반란까지 진압했다.
이후 다리우스 3세의 페르시아 제국을 그라니코스 강에서 격파하고 시리아 쪽으로 남하해 이소스에서 페르시아의 11만 대군을 4만의 병력으로 무찌르며 시리아, 나아가 이집트까지 정복했다.
페르시아와의 최후의 결전이라 할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자신의 정예 기병대인 헤타이로이를 활용해 페르시아 제국을 무너뜨렸으며 이후 인도까지 진출하려 했으나 33의 나이에 풍토병에 걸려 요절했다.
(일설에 의하면 동쪽 바다 끝까지 가보려 했다고)
팔랑크스식 보병 대형과 마케도니아 특유의 정예 기병대 헤타이로이를 매 순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전투마다 큰 이득을 보았으며 스스로가 삼각 대형의 맨 앞 꼭짓점에서 선두로 나서며 적을 도륙내는 용장 스타일이었다. 이렇게 본인이 직접 최전방에서 진두지휘하는 용맹함은 적장 다리우스 3세에게 두려움과 당혹감을 안겨주어 페르시아의 전의를 상실케 했고, 아군에겐 엄청난 사기를 북돋는 등 큰 효과를 보았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1769년 ~ 1821년

설명이 더 필요없는, 프랑스 아니 전세계를 통틀어
이 사람의 이름은 한번쯤이라도 들어본
명장이자 사령관의 대표적 인물
당대 프랑스에서 촌으로 취급받던 지중해 코르시카 섬에서 태어나 프랑스 육군 포병 장교로 임관,
이후 혁명의 열기가 프랑스를 휩쓸고 이를 저지하려는 오스트리아, 프로이센(독일), 영국, 러시아 등 유럽 연합군이 프랑스로 진격해 오자 이를 손쉽게 막아내고 나중에 가서는 러시아와 영국을 제외한 유럽의 대부분을 정복한 먼치킨
유럽의 지리적 특성상 한 나라가 다른 여러 나라를 점령하는 것이 매우 어려우며
무엇보다 유럽 강대국들이 상향 평준화돼 어느 한쪽이 압도적으로 강하지 않은 한 마디로 모두 비등비등한 전력 하에서 오스트리아 제국, 이탈리아, 프로이센, 폴란드, 러시아 연합군을 수 차례에 걸쳐 격파한 불세출의 명장
수부타이
1175년 ~ 1248년

칭기즈 칸이 가장 신임하던 일명 '사준사구' 중에서도 가장 이름을 날리던 불세출의 명장
본디 사준사구였던 제베 휘하의 부하 장수로 시작해
1차 서방 원정 즈음부터 제베의 그늘에서 벗어나 러시아와 조지아의 여러 공국들을 박살내는 등
본격적인 활약을 펼쳤으며
칭기즈 칸 사후 벌어진 2차 서방 원정 무렵엔
실질적인 총사령관을 맡아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 폴란드, 헝가리 지역을 거의 초토화시킴
이후 신성 로마 제국(오늘날의 독일, 오스트리아)과의 결전을 준비했으나 오고타이 칸의 사망으로 몽골로 귀환했으며 얼마 안 가 노환으로 사망한다
역사서에 따르면 61번의 회전(양쪽 군대가 평원이나 개활지에서 벌이는 전투)에서 한번도 패배한 적 없는 거의 무패 신화의 주인공
한신
미상 ~ 기원전 196년

기록상 전공(戰功)과 초한전쟁에서의 활약상을 보면 한신은 세계 전쟁사를 통틀어도 비교 대상을 찾기 힘든 전설적인 명장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승리를 항우의 군대를 상대로 거두었다는 점이다. 물론 항우와 직접적으로 붙은 적은 없으나 개인의 용력이나 용병술에 있어서 마찬가지로 역사상 최고반열에 손꼽는 항우가 키우고 선별한 명장들을 차례로 무너뜨렸고 해하전투에서는 결국 그 항우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패배를 안겨주었다.
팽성대전의 참패 이후, 열악한 한나라의 상황 속에서 고작 3만의 오합지졸로 군세를 시작하였는데, 수 년만에 위(魏), 대(代), 조(趙), 연(燕), 제(齊), 초(楚)의 여섯 개의 나라(六國)를 무너뜨렸으며, 두 명의 왕을 사로잡았고, 한 명의 왕을 참살했다. 그 과정에서 우회 공격, 배수진, 수공, 망치와 모루 등 온갖 방식의 전술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했고, 모든 전투에서 이겼다. 또한 당시 중국의 지배자이자 군사적 능력으로는 역시 역대 최고의 장군 중 하나로 꼽히는 항우를 참살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인물이기도 하다.
항우
기원전 232년 ~ 기원전 202년

중국사를 통틀어 '패왕'이라 불린 유일한 인물로
'혼자서 만 명을 대적한다'는 만인지적,
'산도 뽑을 정도의 기운과 힘'이라는 역발산기개세 등
그의 무력과 야전 지휘관으로서 부대 통솔력과 지휘력, 전술 등 군사적 재능에 관한 고사가 따로 있을 정도
라이벌이었던 한 고조 유방과 그 휘하의 명장 한신과 싸울 때마다 이겼음에도 정치적 식견이 형편없어
숱한 전투를 이겨놓고도 유방 측의 지구전ㆍ소모전에 말려 천하통일의 대업을 유방에게 빼앗긴 비운의 명장
충무공 이순신 장군
1545년 ~ 1598년

임진왜란 초기 경상도와 충청ㆍ강원ㆍ경기 지방까지 파죽지세로 올라온 일본군을
해전에서 연이어 격파하며 전라도 지역의 제해권을 장악함과 동시에 최대 곡창 지대인 호남 평야를 지킴으로써 서해안을 보급로로, 전라도를 보급 기지로 쓰려던 일본의 계획을 박살낸 조선 최고의 명장
이순신의 남해안 제해권 장악과 일본군의 연이은 전라도 공략 실패로 현지 조달(약탈)과 일본 본국으로부터 보급이 어려워진 일본군은 강화 회담 끝에 본국으로 빤쓰런했으며 정유재란 때엔 아예 조선ㆍ명 연합군에게 아주 제대로 박살이 나버린다
한니발 바르카
기원전 247년 ~ 기원전 183년

지중해의 강자로 발돋움하던 로마를 턱 밑까지 위협한 로마 역사상 최악이자 가장 위협적이었던 카르타고의 명장
사실상 로마와 카르타고 간의 제2차 포에니 전쟁을 '한니발 전쟁'이라 불리게 할 만큼 2차 포에니 전쟁의 주인공이며 예상치 못한 움직임으로 로마를 괴롭힘
오늘날 스페인인 사군툼 공격을 시작으로 피레네 산맥과 그 험준하다는 알프스 산맥까지 넘어가 북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들을 차례로 격파하며 심장부인 로마로 포위망을 좁혀옴
이후 중부와 남부 이탈리아의 여러 로마 동맹시들을 회유해 로마를 고립시키고 칸나에 전투에서도 승리하며 로마군을 궤멸시켰으나
오랜 원정에 지친 한니발 군대의 사기 저하와
로마 동맹시들이 한니발의 회유에 넘어가지 않고 끝까지 로마 편을 들며 카르타고에 저항한 점,
여기에 본국에서 보급로 차단과 스키피오가 이끄는 로마군이 바다 건너 카르타고를 포위하자 로마를 코 앞에 두고도 결국 본국을 지키러 귀환해 자마 평원에서 최후의 대회전을 치렀으나 스키피오의 용병술에 휘말려 대부분의 군대를 잃고 오늘날의 튀르키예 지역으로 패주했다가 그를 끝까지 추적한 로마인들에게 암살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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