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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명문가 집안 출신이었다고 알려진 조선 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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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펌프아빠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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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거창부원군 신승선

장원으로 과거급제 후 병조참판, 예문관 대제학, 공조판서, 좌의정 등등 온갖 고위직에 결국 영의정까지 클리어

어머니: 중모현주 (세종대왕의 손녀)

친할아버지: 황해도 관찰사

외할아버지: 임영대군

오빠1: 영의정, 중종의 왕비 단경왕후의 부친

오빠2: 형조판서

오빠3: 형조판서

아버지는 장원급제한 영의정에, 할아버지는 관찰사에, 외할아버지는 왕자에, 오빠들도 영의정 하나에 형조판서 둘

무엇보다 외증조할아버지가 세종대왕

현대로 치환하면 아빠는 국무총리, 할아버지 도지사, 외할아버지 왕자, 큰오빠 총리, 밑에 오빠 둘은 법무부장관(물론 연산군 몰락 후에는 저 대단했던 집안도 멸문당함)

이런 가문의 고명딸로 금이야 옥이야 공주처럼 자랐는데아랫사람들에게 화를 내거나 소리를 높인적 한 번 없었으며 일개 나인들에게까지 다 존댓말을 쓰며 존중했다고 함

폐비 신씨는 어진 덕이 있어 화평하고 후중하고 온순하고 근신하여, 아랫 사람들을 은혜로써 어루만졌으며, 왕이 총애하는 사람이 있으면 비가 또한 더 후하게 대하므로, 왕은 비록 미치고 포학하였지만, 매우 소중히 여김을 받았다.

왕이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음난, 방종함이 한없음을 볼 적마다 밤낮으로 근심하였으며, 때로는 울며 간하되 말 뜻이 지극히 간곡하고 절실했는데, 왕이 비록 들어주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성내지는 않았다.

또 번번이 대군·공주·무보(姆保)·노복들을 계칙(戒勅)하여 함부로 방자한 짓을 못하게 하였는데, 이때(폐비가 된 때)에 이르러서는 울부짖으며 기필코 왕을 따라 가려고 했지만 되지 않았다.

승자의 기록인 조선왕조실록에서 폐비인 신씨를 굳이 미화해서 기록해 줄 이유가 없음

그냥 있는 그대로 건조하게 기록한게 저 정도였다는거 사씨남정기에 나오는 사씨 부인의 모티브가 아니냐는 말이 있었음

웃긴게 천하의 폭군이라는 연산군조차도 자기 부인 착한건 알았나 봄 걸핏하면 옥사를 열어서 도륙을 내던 인간이라고는 믿기지 않게 중전이 친정갈 때 술도 챙겨주고, 중전이 제사 갔다오면 직접 교외까지 마중도 나감

심지어 중전이 얼마나 착하고 어진 사람인지 보라고 직접 전교까지 내림 연산군이 발광하면서 미쳐 날뛸 때 중전이 가서 말리면 조용히 물러났다고 함

대비전 가서 칼 들고 다 죽여버린다고 날뛸때도 중전이 와서 말리니까 참음감히 연산군에게 직언을 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사람도 중전 뿐

마지막에 연산군이 죽기 전 남긴 말도 '신씨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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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잘나갈때 착하게 살았던 복을 받았는지 폐비되고 난 후에도 과거 밑에서 일했던 상궁이나 노비들이 십시일반으로 힘을 모아서 신씨를 도와줘서 큰 모욕이나 곤경을 겪지 않고 여생을 살 수 있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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